고난 주간의 금요일은 성금요일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입니다. 주중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가 고난주간 금요일에 아이들 신앙에 유익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족 카톡방에 이렇게 공지를 올렸습니다.
“고난주간입니다. 내일은 성금요일,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에 내일과 모레 간식은 없고, 금요일엔 고기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는 주일엔 부활주일로 특식을 먹습니다.”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오후에 아빠 엄마는 따스한 햇볕을 쬐러 공원에 나갔습니다. 날씨가 화창하고 조금 더웠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사갖고 갈 거죠?”
“아니요. 성금요일이요.”
“예? 이렇게 더운데 안 마셔요? ... 알겠어요. 성 금요일이니...”
아내가 서운한 것 같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니 빨갛고 노란 튤립 동산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무 예뻐서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 저기 튤립이 피었네. 어서 가서 봅시다.”
“고난주간인데, 그래도 되나요?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아닌가요?”
듣고 보니 아내 말이 맞았습니다. 커피를 안 마시는 것은 입을 즐겁게 하지 않는 것인데, 튤립을 보는 것은 눈을 즐겁게 하는 일입니다. 문득, 성금요일을 지키는 방법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성금요일이라 아이들에게 간식과 고기를 금지했고, 아이들에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음악도 금지한 터였습니다. 아빠도 말한 것을 지키기 위해 좋아하는 커피 믹스도 마시지 않았지요.
문제점을 느끼고 가톨릭과 종교개혁가들은 어떻게 성금요일을 지켰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식 예식을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속죄와 은혜의 본질을 묵상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 날을 지켰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외적 형식과 공로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가톨릭도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성금요일은 가톨릭에서 가장 엄격한 금식일이었습니다. 만 18세부터 59세까지는 하루 한끼만 온전히 먹고, 나머지는 소식해야 했고, 만 14세 이상은 고기가 금지되었습니다. 고기 금지 항목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금지한 내용과 같았으니까요. 이밖에도 가톨릭은 오르간 음악도 금지했습니다. 이것도 제가 음악을 금지한 것과 같았습니다.
분명히 우리 부부는 선한 의도로, 아이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 행한 일들입니다. 하루 간식을 먹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결코 큰 짐이 아닙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오늘이 성금요일이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이구나.’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체의 즐거움을 제한하는 방식의 신앙 교육은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 즐거움을 절제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절제는 예수님의 수난에 비교할 바가 안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그런 모습을 기뻐하실까요? 예수님의 눈에는 불필요한 고행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자기 절제를 실천할 때엔 우리 마음엔 자연스럽게 공로주의가 싹틉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의 고난을 기념했어.’ 마음에 뿌듯함이 생깁니다.
이러한 공로주의는 내 행위에 기반합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가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에 주께서 감당하신 일입니다. 본질적으로 정반대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거스르는 것은, 비록 사소한 것이라도 신앙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복음적이지 못함을 깨닫고, 나는 아내를 위해 아이스커피를 사왔습니다. 저녁 식탁엔 특별히 더 맛있는 고기를 차렸습니다. 식사 후에는 후식도 먹었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반대로 행한 것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아빠는 아이들에게 성금요일을 지키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관한 성경 본문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기도로 마무리했습니다.
육체를 괴롭게 하는 일은 우리 신앙의 본질과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사랑과 은혜를 더욱 알아가는데 힘써야 합니다. 고난 주간을 지키는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