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쇼핑센터에 온 가족이 나갔다.
점심식사를 하기 전, 한 아이의 운동화도 샀다.
새 신을 신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내 마음도 좋았다.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생일자도 아닌데, 새 신발을 받았네~”
자연별곡에서 즐거운 식사도 했다.
저녁쯤, 새 신발을 구입한 아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아이가 말했다.
“내 생일엔 선물도 안 해주고, 외식도 안하더니, 다른 아이 생일날 나한테 신발 사줬다고 그것을 몇 번씩이나 얘기해요?”
생각해보니 장난삼아 세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하셨는데, 아차 싶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오해할 만도 했다.
“아빠가 네 신발 산 것이 아까워서 한 말이 아니다. 아빠가 엄마한테 사주라고 말해서 엄마가 네게 사준 거란다. 장난삼아 말한 것뿐인데 지나쳤구나. 미안하다.”
부모가 무심코 한 말에 아이는 얼마든지 오해하고 상처 받을 수 있다.
신발에 관한 마음은 풀렸다.
나는 아이의 말 중에 자신의 생일을 제대로 축하해주지 않았다는 말이 궁금했다.
“네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제 생일에는 외식도 안하고, 선물도 안 줬어요. 한 번은 형제들이 아파서, 또 한 번은 아빠 허리 다쳐서 외식도 못했다구요. 크리스마스 선물만 받고 생일 선물은 받지 못했어요.”
아이 생일이 12월 24일이라 크리스마스와 중복되기에 아이 생일축하가 소홀해질 수 있었다. 몇 해 전 아이 생일 즈음에 허리를 다친 기억도 떠올랐다. 성탄 준비 때문에 허리를 다쳐서 몇 달 고생한 적이 있다.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이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철 형제들이 아파서 외식을 못한 적도 있다.
아이가 슬퍼하기에 말했다.
“네가 많이 섭섭했구나. 다른 아이들은 생일축하를 잘 해줬는데, 너는 그렇지 못해서 속이 상했구나... 아빠가 네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은데...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생일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괜찮겠니?”
아이는 못 받은 선물을 받기로 했다.
오래 지난 일이라 단지 말로 위로하고 다음에 잘해준다고 하면서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에 쌓인 섭섭한 마음을 깨끗이 해결해주고 싶었다.
주님께서는 두 번이나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노엽게 하지 말라는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헤아려주라는 말씀이다. 존 가트맨 박사의 ‘감정코칭’은 주님 말씀의 정확성을 잘 보여준다.
훈계하기 전에 먼저 감정을 공감해주기, 그 다음 가르치기.
언제나 아이 감정에 공감해주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이 마음에 쌓인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소해 줄 필요가 있다. 상한 마음으로부터 비뚤어진 말과 행동이 나오는 법이니까. 부모는 아이일지라도 존중해주고,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 골로새서 3:21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에베소서 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