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이가 도서관에 같이 가겠다고 요구했다.
문제는 아이가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도서관에 일하러 가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줄 수 없었다. 언니들과 오빠는 혼자서 책을 볼 수 있기에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언니 오빠가 옷을 갖춰 입는 모습을 보자,
아침밥도 다 먹지 못한 아이가 밥을 입에 문 채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말했다.
“너는 지난번에도 도서관 갔다가 빨리 오자고 떼를 쓰지 않았니? 약속을 여러 번 어겼다. 그러니 집에 남는 게 좋겠다.”
엄마의 말에 아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글을 못 읽는데 세 시간이나 아이가 도서관에 머물 수 있을까?
아이는 퍼즐을 맞추겠다고 제안했다.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첫째, 둘째, 셋째를 불러 말했다.
“너희들이 동생에게 책을 두 권씩 읽어주면 좋겠다.”
동생에게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말에 한 아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동생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까?”
답은 빤하기에 아이가 침묵을 지켰다.
잠시 뒤, “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하고 도서관에 가자. 단 집에 가자고 떼를 부리면 안 된다. 만약 이번에도 약속을 어기면 다음번에는 같이 가지 못한다. 알겠느냐?”
“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이는 갈 수 있다는 말에 얼른 밥을 먹었다. 아이를 기다려줬고, 출발이 30분이나 지체됐다.
땡볕에 나가니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아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빠 손을 잡은 채 재잘거리며 걷는 아이를 보니 잘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는 어땠을까?
도착하자마자, 초등학교 1학년인 셋째 아이가 동생을 데리고 가서 책을 읽어줬다. 기특하게도 동생을 위해 두 권이 아니라 여섯 권도 넘게 읽어줬다. 다른 언니 오빠도 동생을 위해 ‘봉사’했다.
도서관에서 긴 시간 동안 아이는 떼도 부리지 않고 잘 지냈다.
아빠가 일하는 책상에 와서는 콧노래를 몇 번 불렀다. 집에 가자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 떼 부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잘 지켰네?”
“네~”
“약속을 지켰으니 다음번에도 도서관에 올 수 있다.”
아이는 빙긋 웃었다.
아이가 약속을 지켜서 나도 기뻤다. 아이의 과거 잘못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준 것은 잘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내게 계속 기회를 주시지 않는가!
번번이 실패해도 번번이 다시 기회를 주신다!
잘못을 반복하는 자녀에게 부모 역시 다시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