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 0

자매끼리 아웅다웅 다툴 때

며칠 전부터 첫째와 셋째 딸이 으르렁거리며 다퉜다.
눈여겨보았으나 관계가 좋아지지 않았고 사소한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성경대화 시간에 하나는 눈을 흘기고 다른 하나는 조소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즉각 성경대화 시간을 중지했다.
“너희들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 둘이 들어가서 해결하도록 해라.”

두 아이는 뾰로통해서 자기네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가정에서는 다툼이 생기면 일차로 서로 대화로 화해를 유도한다.

이번엔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았다. 15분이 넘어도 원망 섞인 말이 들렸다.

중재를 위해 내가 방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둘이 서로 날선 공방을 했다. 자신의 억울함, 상대편의 잘못을 말하고 있었다. 말다툼은 끝이 없는 법이다.

내가 말을 꺼냈다.
“복음의 핵심 세 번째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계명이 무엇이지?
“서로 사랑하는 거요.” 첫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너를 어떻게 사랑하셨지?
“...”

“예수님은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단다. 너는 그렇게 동생을 사랑하고 있느냐?”

동생을 향해서 말했다.
“예수님이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너는 그렇게 언니를 사랑하고 있느냐?”

“하지만, .... ”
딸들은 수긍하지 않은 채, 자기의 억울함과 상대방의 잘못을 다시 얘기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상대를 참아주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지 말고, 남을 용서하거라. 이것이 사랑이다. 만약 아빠가 너희를 참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됐을까? 날마다 매가 춤출 것이고, 너희들 엉덩이는 불이 날 것이다. 왜 아빠가 너희를 참아주지?”
“...”

“하나님께서 아빠를 참아주고 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자비롭게 대하시니 너희도 서로 자비롭게 대하거라.

아빠와의 관계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일까?
두 딸들의 안색이 누그러졌다.

“너희들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 있어? 없어?”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둘 다 일어서렴. 마주보렴.”
둘이 민망한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둘이 서로 악수하고, 미안함을 고백하고 서로 용서하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화해는 이루어졌고, 이어진 성경대화는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어떻게 아이들이 화해한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이 배운 말씀을 상기시켰을 뿐이다.

아이들은 미숙하기에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웃과 자기의 모습을 비춰보게 한다. 하나님의 큰 사랑에 비하면 우리의 다툼은 얼마나 사소한 것 때문에 일어나는가!
속 좁은 우리는 하나님의 넓은 가슴을 깨달으면 부끄러워질 뿐이다.